1.
어쩌다 보니 주말에 화상회의가 잡혔다.
시간도 11시~12시
그것도 모르고 꽁꽁이와 같이 매미잡기로 약속을 해버렸다.
하는수 없이 사정사정해서 엄마와 꽁꽁이는 먼저 나갔다.
나는 화상회의가 끝나는 대로 나가기로 했다.
2.
쓸데없고 필요없는 회의는 오래 한다고 하던가?
지지부진 반영할것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건설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는 회의가
꾸역꾸역 별 호응도 없이 1시간을 꽉꽉 채우고 끝이 났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왜 회의를 한건지 다들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얼른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디쯤인지 물었다.
아내 : 초등학교 근처 놀이터야 여기에 매미가 많아
나 : 그래 거긴 비와 비오면 우산 가지고 갈게
꽁꽁 : 여긴 비 안와 아빠 빨리와
꽁꽁이가 옆에서 듣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장난을 치기로 했다.
나 : (과장된 톤으로) 어쩌지 회의가 길어져서 오늘 밤까지 해야 할거 같은데 거긴 못갈거 같아
아내 : 응 진짜 할수 없지 뭐
꽁꽁 :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나 : 꽁꽁아 미안 회의가 길어져서
꽁꽁 : 안돼 안돼 빨리와 안돼
나는 신발을 신으며 다시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전화를 끊었다.
3.
밖을 나와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산을 가지고 천천히 놀이터로 걸어갔다.
비가 와서 시원한게 아니라
한증막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놀이터 가는 길 가로수에 적당한 높이에 매미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를 잡았다.
'역시 아빠 최고' 라는 말을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렇게 놀이터에 도착했다
아내와 꽁꽁이는 비가 오니 큰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의기 양양하며 우산과 곤충채집통을 내밀었다.
꽁꽁 : 뭐야 벌써 한마리 잡았어?
내가 생각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나 : 왜 오면서 한마리 잡았지
꽁꽁 : 싫어 내가 잡을거란 말이야
그럼 같이 잡자
그렇게 비오는데 30분을 매미를 잡았다.
매미가 생각보다 많았다.
30분 동안 5마리를 잡고 중간에 3마리를 놓쳤다.
4.
이때서야 매미를 잡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 : 꽁꽁아 매미 왜 잡아?
꽁꽁 : 만져보려고
나 : 엉? 매미를 왜 만져?
(나는 사실 날개 있는 곤충, 해충을 제일 싫어한다. 바퀴벌레, 나방 등등)
꽁꽁 : 몇일전에 친구들이랑 매미를 잡았는데 나만 무서워서 못만졌어 그래서 용기내서 만져보려고
나 : 그래? 그런거면 만져봐야지, 아빤 저쪽에 서있을게
꽁꽁: 아니야 아빠도 같이 만져야지 나도 용기를 내는데
나 : 아니 나는 왜?
옆에서 아내가 인상을 쓴다. 몇일전 혼자 매미를 못만져서 나중에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랑 매미를 잡으러 가자고 몇일을 노래를 부른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난 아빠랑 놀곳 싶어하는 줄 알았다.
나: 그래 만져보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곤충채집통을 열고 채집망을 이용해 한마리만 꺼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채집망을 최대한 접어서 두껍게 하고 매미 한마리를 땅에 눌렀다.
나 : 꽁꽁아 만져봐 날개 부터 만져봐
꽁꽁: 응 알았어 으악 아빠 가만잡고 있어
내 손에 힘이 빠졌었나 보다 한마리는 자유를 향해 날아가 버렸다.
나 : 알았어 아빠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다시 채집망을 이용해 한마리를 더 꺼냈다.
이번에는 채집망을 두번만 겹쳐서 잡았다
나 : 꽁꽁아 만져봐
꽁꽁 : 아빠 움직이지마
나 :알겠어
꽁꽁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날개를 만지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나에게는 일년같은 시간이 지났다.
잡은 매미는 채집통을 열고 모두 날려줬다.
그렇게 폭염속에 비 속에 한겨울이 지나갔다.
5.
그 날밤 자기전에 꽁꽁에게 물어봤다.
나 : 꽁꽁아 매미잡은 느낌이 어땠어?
꽁꽁 : 응 날개는 조금 얇고 미끄러웠고 몸은 이상한 느낌이었어
나 : 날개가 미끄러웠어?
꽁꽁 : 얇고 미끄러웠어 그리고 매미 잡는게 소원이었었는데 오늘 이뤘어
나 : 매미 잡는게 소원이었어?
꽁꽁 : 응 이제 이뤘어
꽁꽁이는 세상 없는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깨물어주고 싶었다.
오전에 한심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나 : 꽁꽁아 또 다른 소원 있으면 이야기해 아빠랑 같이 하자
꽁꽁 : 알겠어 아빠
'초등학교 학부모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2일째(2021.8.20.) (1) | 2021.08.31 |
---|---|
168일째(2021.8.16.) (0) | 2021.08.17 |
150일째(2021.7.29.) (0) | 2021.08.03 |
148일째(2021.7.27) (0) | 2021.07.28 |
147일째(2021.7.26.) (0) | 2021.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