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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 비판 stooory

지혜까지 바라지 않아

by 마도사친구 2019.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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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인들에게 지혜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과거 사람들은, 노인들은 지혜로웠을까?

 

아프리카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그렇게 경험과 삶의 지혜, 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존경받던 존중받던 사람들이 있었다.

 

과연 지금도 있을까?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는 것은

 

나의 일천한 인간관계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의 세대나 시절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책이나 소설, 만화에서는 그런 노인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며,

필요할때 남모르게 도와주는

 

말하자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다.

 

그로인해 주인공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무언가 성취하는 인물이 된다.

 

 

하지만 내 주변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재산이 몇십억, 몇백억이 있고 

 

과거에 정계와 재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사람들을 안다.

 

현재의 그들은 마치  6살 먹은 어린아이같다.

 

항상 자신이 최고이고 떠 받들여져야 하는 존재로서 위치한다.

 

조금이라도 소홀하거나 무시 받는다고 생각하며 

 

불같이 화를 내고 토라져 버린다.

 

주변 사람들의 기분이나 입장, 상황은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기분, 입장, 이해관계만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조금의 지혜와 아량, 품격을 기대하고 이야기를 하면

 

여지없이 이상한 과거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뭐 비슷한건 있다. 마치 무협소설속의 자랑들이 난무한다.

 

재미는 없는 무협소설이지만...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기에는 너무 일천한 인연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은 소설 속 노인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난 주인공이 아니다.

 

한낮 조연이나 지나가는 행인259번 정도 될까?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의 도서관은 아닐지라도 

 

나만의 작은 책장이 되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봤었다.

 

그러나 

 

그들은 회초리이고 절벽이며 낭떠러지였다. 

 

작은 도움도 작은 구석자리도, 작은 그늘도

 

나에게 허락된 것은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그런 작은 바램을 가져 봤을 뿐이다.

 

내가 그들의 입안의 혀일때는 좋아했지만

 

가시라고 생각되자 뱉고 밟아버리는 그들이었다.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 또한 

 

그렇게 늙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나만은

 

조금 더 현명하고

 

조금 더 관대하고

 

조금 더 여유로워지길 바래본다.

 

아님

 

그 나이까지 살아있지 않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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