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로 인생역전 - 대학내일 20대연구소, 빙글 - 중앙북스
P23 나는 운명론자다. 어차피 될일은 되고 안 될일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하고 운이 왔을때 잡을 자격 정도는 있어야 한다. 내가 드라마를 그냥 보기만 했다면 아무것도 안 됐을 거다. 글을 쓰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뭔가를 만들고 남겼으니까 덕질의 증거가 힘을 발휘했던 것 아닐까.
P28 새롭게 시작하는 건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 단 하다 보면 점점 더 재미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뭐든지 재밌다. 하고 싶어서 뛰어든 일이니까 하지만 기껏 찾은 재밌는 밥줄이 지속 가능하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돌아가도록 판을 짜는 것도 필요하다. 당장에 뭔가 이뤄내는 것보다는 오래오래 즐겁게 살자고 시작한 일 아니었던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재밌게 일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P35 사람관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놀때는 놀고 일할때는 일하고 손님 많은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빡세게 일해야 하지만 자영업 하는 분들 중에 알바가 잠깐이라도 쉬는 모습을 절대로 못 보겠다는 분들이 많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점점 "내가 너에게 월급을 주니까 이 시간부터 죽어라 일만 해" 이건 서로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 부분에 있어서도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이다.
P40 요즘은 직장생활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찾기가 어렵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스트레스 받는 이유 다 똑같다. 앞서간 선배들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의 끝도 다르지 않을거 같아 두렵다. 그때가 되면 한창 대출금 갚고 아이들 크고 그럴 때인데 그때 나와서 방법찾는 건 더 어렵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당장 본인이 용기를 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단 주체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다. 수동적인 사람은 힘들다. 일단 나오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직접해야 한다. 못하겠으면 조직 밖으로 탈출해서는 안 된다. 회사 다닐때 직급이 올라가면서 연차가 많아지니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게 편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걱정이다.
다른건 차치하더라도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명확히 하라'는 부분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내가 못 견디는 것을 직원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쉬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긴 한데 직원들은 더 할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 가게이지만 직원들한테는 남의 가게 아닌가.
P44 "이제 와서 돌아가면 뭐 하건데?" 그 한마디에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맞아 나 엄청 간절히 원해서 온거였지'
이 길에 들어선 1년쯤 되었을때 고비가 찾아왔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어느날 손님으로 온 어떤 아저씨가 물었다. "이제와서 한국 가면 뭐 먹고 살 건데?" 그 말을 듣고 일단 끝까지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그 고비를 넘기자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만 든다. 막연하고 두루뭉술했던 생각들이 점점 뾰족하고 구체적인 길이 되어간다.
P49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1년정도 그 생활을 반복하니까 무료해졌다. 다 의미 없게 느껴지면서 갑자기 어른들 말이 맞는거 같았다. '이제라도 한국 들어가서 직장생활 해야 되는 건 아닐까' 한창 그러고 있을때 한 아저씨 손님을 만났다. 술 먹으면서 넋두리를 하니까 일침을 놓았다.
"한국 가면 뭐하게 나이 서른 먹고 다른 경력도 없고 월급 주면 아무일이나 하게? 평생? 처음에 재미있었다며 한국 가서 살아도 하는 고민은 똑같아 어렵게 선택해서 시작한거니까 그냥 끝까지 한번 해봐"
맞는 말이었다. 다시 마음을 잡았다. 스쿠버 강사 시작했으니까 마지막 단계인 코스디렉터까지는 해보자. 그러고 나면 센터 오픈도 해보자. 그러면서 1년을 더 있다보니 새로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고 고은이도 만났다.
P54 여행 왔다가 너무 좋아서 정착한 분들이었다. 여행 다니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본업으로 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좋은지 안 좋은지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 해봐야 할고 가봐야 알지 연애를 하고 싶으면 이성이 많은데 가야 하듯이 뭔가 알고 싶다면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곳에 가야 하지 않을까.
P78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호주 가기전까지는 여권도 없었던 사람이다.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무작정 친구 따라 나섰다.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러 가든 일을 하러 가든 견문을 넓히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한국에만 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도 만났고 상상도 하지 못한 좋은 직업도 찾았다. 물론 각오는 해야 한다. 집에서 돈을 지원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면 정말 힘들다. 그래도 하고 싶은게 있다면 일단은 무조건 해보라고 하고 싶다.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아무일도 안 생기는 거다.
P84 뜻밖에도 부모님께서 지지 선언을 하셨다.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하자 선뜻 "정말 하고싶으면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단 몇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커피를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찾을것 둘째 그 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하면 그때부터 시작할것 셋째 커피로 돈 버는 것에서 끝날거면 시작도 하지 말고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교육자가 되는 것까지 목표로 삼겠다면 할것
잠까지 설처가며 매일같이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거 같았고 그러면 끝까지 미련이 남을 거 같았다. 죽기 살기로 해보자 결심했다.
P99 "세상이 정해놓은 길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길이 좋다"
P110 이 업계에 들어선 뒤 단 한건의 성공도 없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나 기획 좀 한다고 아마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내가 톱일 거라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은데 막상 성공해본적은 없었다. 어느 순간 그 원인을 대표에게 회사에게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첫번째 회사는 너무 보수적이라 문제 두번째 회사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문제 세번째 회사는 경영을 못해서 문제 이래서 문제 저래서 문제 그들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인생인데 뭐가 잘못되더라도 내 탓이어야 하는거 아닌가 왜 실패마저 남에게 의지를 하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떠오르는 건 단 하나였다. 내 사업을 하자 지난 세번의 실패를 통해 배우고 깨쳤던 것들을 곰곰이 되씹어 봤다. 내 회사는 어떤 회사여야 할까 상상해 봤다. 성공에는 정답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최소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고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수 있을지 직원들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해줘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함께 하는 직원들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P115 앞서 언급했듯 그 회사의 재정상태는 한 달에 몇만원하는 정수기 대여료 하나 제대로 못 낼 만큼 심각했다. 일하는 도중에 차압 딱지가 붙은 적도 있고 깡패같은 사람들이 빌려간 돈 내놓으라고 사무실에 들이닥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놀라웠던 건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태연한 대표의 모습이었다. 돈 내놓으라고 악을 쓰며 들어온 사람들이 대표님을 만나고 나깔땐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나갔다. 대담하고 화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좋아하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배울 점은 있었다. 회사는 언제든 위기가 닥칠수있다. 여기서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바로 무너지고 강한 사람은 어떻게든 버텨서 기회를 본다는 걸 배웠다. 그 사람은 결국 추락했지만 어쨌든 버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P138 '내가 할수 있는게 고작 이직뿐인가'
조금 더 나은 근무조건을 가진 출판사를 찾아 채용공고를 살펴보던 중든 생각이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도 여행을 갈 수도 하다못해 아무것도 안하고 좀 쉴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여러가지 선택권을 배제한채 오로지 '더 나은 회사'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고작 20대 중반인 나이였고 뭔가를 시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인것 같았다. 앞으로 몇년만 지나도 이런 고민 자체를 사치라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P139 취업과 퇴사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고 북아일랜드로 떠났다.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캠프힐'이라는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일했다. 지적 장애인들이 자립해서 생활 할수 있도록 전 세계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먹고 사는 마을이다. 나는 그들 중에 두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거기 오는 유럽친구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이다. '갭이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지러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P141 캠프힐에서의 생활은 나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우습게도 그들 중 몇몇은 한국인 자원봉사자를 반기기도 했다. 군말 없이 일을 잘하니까 한국인들은 "NO'를 안한다. 심지어 몸이 아파도 일한다. 거기선 그걸 되게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왜 기어코 일을 나오는지 일이 너무 많이 주어지면 거절해야 하는데 왜 초과근무를 하는지 동료들 중 대부분은 유럽권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이거 부당해" "이 일은 나와 맞지 않아" 이런 말을 잘했다. 우리와 달리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1순위에 놓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곳에는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없었다. 일에 목숨 걸지 않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 누군가와 경쟁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때 깨달은 그 마인드를 책방을 운영하면서 늘 잃지 않으려고 한다.
P164 건강한 사회라면 하나쯤 망해도 나머지가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지역 브랜딩도 그렇다. 기존 지역 브랜딩의 대표적인 예가 지역 축제인데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나고 그 후 남은 시설물들이 대부분 가치있게 활용되지 못한다.
P180 초심을 되찾자 다행스럽게도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매 컷마다 마음을 담았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리니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곧이어 레스토랑 홍보, 웨딩촬영, 기업행사 스케치 등 점점 더 많은 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미국의 대자연을 담는 50일간의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암흑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 비결은 별거 없다. 먼저 '과연 될까' 싶어 망설이고 있는 행동을 해버릴 것 그리고 위기가 찾아온다면 오로지 '어떻게 성장할까' 만 생각할것, 여기에는 나의 단순함도 한 몫했다. 2년간 먹고 살 길이 캄캄한데도 다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는 방법은 '단순하게 생각하게'인것 같다.
P194 어릴 적 아버지가 어느날 직장을 때려치우고 홀연히 절로 들어가 3개월만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셨다. 아버지 연세에 더군다나 딸린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굉장한 도전이었고 그 모습이 내겐 크나큰 충격이었다. 덕분에 고등학교때 부터 아버지가 개업한 세무사 사무실에서 계약서 쓰는 법을 곁눈으로 배웠고 사업가 마인드를 조금씩 익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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