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so한 stooory

알아서 가난하기 싫다.

by 마도사친구 2020. 3. 24.
반응형

'나이가 들면 아는 것이 많아져서 겁쟁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게 병' 이란 속담도 있다.   

같은 의미로 가난도 알아서 가난하기 싫다. 아니 가난을 알아서 내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기 싫다.

나는 어릴때 가난했다. 그 가난이 지긋지긋하게 싫지는 않았다. 그냥 삶이 그랬다고 생각했다.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가난과 같이 살았다. 지금도 나는 다시 가난하라고 하면 가난하게 살 수 있다. 그것은 내 책임이기에 내가 무능하고 내가 노력이 적었으며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그렇기에 그럴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살 수 있다. 아끼고, 덜먹고, 덜사고, 덜입고, 살아갈 수 있다.  

백번 양보하고 천번 양보해서 내 부모님, 내 배우자에게까지는 그렇게 하자고 할 수 있다. 나처럼 못난 사람을 사랑했기에 받는 벌이라고 기꺼이 웃으며 말할 수 있다.(쉽지는 않을 것이다. 백번 미안하고 천번 마음아플것이다.)  

하지만  

내 자식에게는 절대 가난을 알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알기에, 내가 살아 봤기에 가난을 알게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아니기에 해줄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래도 내 자식에게 만큼은 가난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우기 싫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재능도 펼쳐보지 못할까봐 겁이난다. 많은 가능성을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제한 받을까봐 두렵다. 그저 내 자식은 가난을 텍스트로, 영상으로만 알기를 바랄뿐이다.

난 그저 이기적인 부모일 뿐이다.   

그렇더라고  내 자식이 자신을 혼자만 아는 사람이 된다면,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 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된다면,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나는 차라리 가난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가난은 병이 아니라 삶의 형태일 뿐이다. 지금 가난하지만 나중에는 가난하지 않을수 있다. 하지만 남과 공감하지 못하고, 혼자만 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병이다. 고칠수 없는 병이다.  

나는 이기적이더라도 내 자식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역시 난 이기적인 사람인가 보다. 

반응형